11중대 부근은 월맹군 정규부대와 대치하고 있어 적정이 잦은 지역이었다.

어느날 밤 중대장 김진선대위는 소대장들과 함께 중대 휴게실에 촛불을 켜놓고

작전토의를 하고 있었는데 75㎜ 무반동총 포탄이 날아왔다.

사격은 한 발로 그치지 않고 몇 발 계속됐다.

김대위는 황급히 철모를 쓰고 관망대로 뛰어 올랐다.

곡사포를 풀라고 지시한 다음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칠흑같은 어둠뿐이어서

어림잡아 포를 쏘기 시작했다. 그날 밤 쏜 포탄은 1천5백발은 족히 됐다.

숨어있는 월맹군이 초토화될 정도의 엄청난 물량이었다.

얼마후 아군 피해상황을 살펴본 김대위는 너무 놀라 할말을 잃었다.

그날밤 중대에서 휴게실을 포함하여 세군데에 촛불을 켜놓고 있었는데

촛불이 켜진 곳마다 포탄이 명중했던 것이다.

1명이 전사하고 3명이 부상했다.

어떻게 그런 기막힌 사격술을 구사할 수 있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평소의 야간사격훈련과 경험이 바탕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들은 포 한발을 쏘면서도 험하고도 먼 호지명루트를 따라 하노이에서부터

가져온 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흔히 말하는 「인민의 피와 땀」이 밴 「영웅적 투쟁」을 위한 도구이므로

포탄 한 발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1천5백여발의 포탄이 떨어진 장소를 다음날 아침 수색한 김대위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포를 쏘았는데도 월맹군이 죽은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재차 수색에 나섰을 때 김대위는 작은 동굴을 발견했다.

월맹군은 이 동굴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천 수백발의 포탄에도 끄덕 없었던 것이다.

역시 11중대에서 겪은 일이다.

1소대가 매복을 들어가 월맹군을 쳤다.

'루시엠'강을 건너 166고지가 있는 아래편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느닷없이 총격을 가해져 분대장이 넓적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대나무가 우거진 조그만 언덕위였다.

M-79유탄발사기를 퍼붓고 수색에 나섰는데 다시 총격이 날아와

선임하사가 또 부상을 당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싶어 중대 박격포를 풀어 사격을 했으나

총알은 여전히 날아왔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겠는데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중대장 김대위는 마지막 시도를 해보기로 하고 분대장과 사병 하나를 불렀다.

『여기서 기관총으로 집중사격을 퍼부어 주겠다. 

그 사이에 너희들은 포복으로 올라가라』

두 사람은 기관총의 엄호 속에 목표 지점을 향해 포복해 올라갔다.

드디어 적의 2m전방까지 도달한 분대장이 적을 사살했다.

사살지점에 도착한 김대위는 어이가 없었다.

월맹군 한 명이 7시간을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체는 이미 발목이 달아나고 없는 등 온통 부상을 입고 있었다.

병사들은 치를 떨었다.

그러나 김대위는 분노할 수도 연민을 느낄 수도 없었다.

다만 그 월맹군의 정신력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용감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김대위였지만

그때만큼 강렬한 충격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

얼마전 나를 만난 김대위(그는 전방 사단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는

이 때 일을 떠올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과거를 돌아보며 여러가지 회개를 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이 일이었습니다.

당시엔 분한 마음이 앞서 그랬지만, 적이라 해도 그렇게 용감히 싸운 전사를

후히 장사지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후회스러워 집니다.

비록 적이지만 훈장을 달아 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