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중대와 대치하고 있던 월맹군의 지휘관은 여자였다.

하도 여러번 11중대에게 당하다보니 앙심을 품은 것 같았다.

그러나 나와 김대위가 있는 동안에 예상됐던 공격은 실행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11중대는 이 월맹정규군의 공격을 받고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물론 나와 김대위가 귀국한 다음이었다.

나는 저들이 우리에게 당한 앙갚음을 우리 후임자들에게 한 것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베트콩 포로들에게 들은 바로는

『따위 킴(김대위)를 잡으려 했는데 실패했다』고

그 부대의 여자지휘관이 땅을 치더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전해 듣자 일순 소름이 끼쳤다.

11중대가 상승의 전투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데는 몇가지 비책이 있었다.

병사들로 하여금 전쟁의 공포증을 털어버리고 훈련 받은대로 전투에 임하게 하는 것이다. 전쟁공포증이란 어떤 교육으로도 씻어낼 수 없다.

실전에 참가하여 많은 경험을 쌓은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파월장병들이 전투부대에서 근무하는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경험이 쌓이기도 전에 적의 총탄에 맞을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어떤 충격요법을 쓰게 되는 것이다.

전장의 비정함은 스스로 체험하기 전에는 실감할 수 없다.

얼마전 국내에서도 개봉된 미국영화「플래툰」이 월남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거기에 간간이 비치는 비참한 장면 역시 실전에 비하면 일부도 되지 않는다.

이런 전쟁터에 부하들을 내보내는 나로선 한가로운 감상에 빠져있을 수 없었다.

적의 총탄에 맞거나 붙잡혀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단단한 정신무장이 필요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킨다는 대의명분도 좋지만, 알고보면 다 귀한 집 자식들인데 누구 하나라도 어이없는 죽음이나 부상을 당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담력을 기르는 데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얼마나 담대하게 적과 마주쳐 당당히 싸울 수 있는가가 문제였다.

11중대는 이런 면에서 철저했다. 중대장 자신부터 솔선수범해 부하들로 하여금 베트콩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도록 했다.

퀴논지역 베트콩사령부를 섬멸한 서대위의 활약이 그 좋은 보기로 꼽힌다.

1969년 여름,

월남전이 전환기를 맞고 있을 때 서대위는 소총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퀴논지역에서는 민간화물차를 습격하는 베트콩이 수시로 출몰하곤 했다.

아무리 전쟁중이라고는 하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비신사적 행위로 서로가 금하게 마련인데 물자가 귀한 그들은 이를 가리지 않았다.

화물차가 습격을 받은 것은 재구대대 대대장 이ㆍ취임식이 있기 며칠전이었다.

습격을 받은 차는 월남에 진출해 있던 한진화물 소속 트럭이었는데, 8대가 1번도로를 따라 퀴논에서 하몬드베이스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이 습격으로 운전사 1명이 숨졌다.

사단장 윤필용장군은 철저한 보복을 명령했다.

이 임무는 1연대 2대대가 수행하게 되었고, 3대대에서 11중대가 지원을 나가기로 하였다.

서대위는 퀴논반도에서 바닷가로 전진하면서 수색작업을 벌였다.

이쪽은 일부가 무제한 사격구역이었다.

무제한 사격구역이란 말 그대로 사격대상에 제한이 없는 곳을 가리킨다.

사람이건 개 돼지건 보이는 대로 쏘면된다. 

그에 반해 제한사격구역은 민가나 시장같은 곳으로, 선별해서 사격하는 곳이다.

대체로 무제한 사격구역이 더 위험스럽다.

언제 어디서 적의 사격이 날아올지 모른다.

그런만큼 움직이는 것은 보이는대로 사격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병사들의 심리는 묘하다.

오히려 무제한 사격구역에 들어가면 덜 긴장한다.

위험이 잠복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기를 보호할 수단인 소총과 수류탄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제한사격구역에 들어가면 사정이 다르다.

주민을 가장한 베트콩들로부터의 위해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무기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어 병사들은 불안을 느낀다.

11중대가 수색해 내려간 해안가에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해안은 무제한 사격구역이었지만 마을은 제한구역이었다.

해안에 이르러 밀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몰골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11중대가, 북쪽은 2대대 8중대가 각각 포진했다.

다음날 아침 주간수색을 준비하던 중 8중대장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물 건너편에 베트콩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손을 들고 서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들은 물이 깊어 건너갈 수 없으니 11중대에게 잡으라고 했다.

서대위는 그 낙오된 포로를 획득했다.

포로는 곧 군사정보부대(MIG)에서 데려갔다.

한진트럭을 습격한 베트콩 일당이 이 부근에 잠적했을 것으로 추측한다면 이 포로로부터 귀중한 정보를 입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는 기대한 대로였다.

11중대가 차단하고 있는 마을에 베트콩 잔당이 숨어들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군사정보부대에서는 이 포로를 데리고 다시 11중대가 배치된 지점으로 왔다.

그의 자백에 따르면 이 마을에 베트콩 퀴논지역 사령부가 있으며, 그들이 트럭을 습격했다는 것이다.

서대위는 곧 마을로 들어가 병력을 분산배치하고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포로의 자백에 따라 처음 수색에 나선 집에서는 흔적만 있었을 뿐 성과는 없었다.

두번째 지점으로 옮겼다. 마을이 끝나는 길옆에 독립가옥 한 채가 서 있었다.

낡고 헐었으나 꽤 풍채가 나가고, 집 뒤편으로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었다.

길 아래의 바다쪽은 염전이었으나, 오랫동안 관리를 안한 탓인지 거의 폐전이나 다름 없었다.

마당은 시멘트가 깔려 있었고 허리정도 차오르는 블록 벽돌담이 네군데에 서있었다.

그 담안에 베트콩들이 숨어 있다고 했다. 서대위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전에 수색을 하다가 무심코 그 벽돌담에 걸터앉아 C레이션을 까먹었던 곳이었다.

일순 긴장이 감돌았으나 서대위는 하루종일 수색하느라 피곤한 상태였으므로 허물어진 집 담벼락에 기대앉아 분대장과 부분대장을 불렀다.

그리고 담 안을 조사해보라고 일렀다.

그들은 부서진 블록 담을 치우며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그때 부분대장이 시멘트 포장지 한 장을 들춰보이며 말했다.

『중대장님, 이거 국산 시멘트 포장지인데요!』

포장지에는 우리나라 쌍용시멘트 상표가 있었다.

부분대장이 한 꺼풀을 벗겨내고 두꺼풀째 들어내려는 찰나 포장지를 들춰낸 그 자리에서 시커먼 손이 불쑥 튀어 올라왔다.

놀랍게도 그 손에는 안전핀을 제거한 수류탄이 쥐어져 있었다.

서대위는 순간적으로

『잡아라!』고 소리쳤다.

일순간 승강이 벌어졌다.

손을 붙잡은 분대장 하사는 수류탄을 뺏으려 하고, 튀어올라 왔던 검은 손은 놓치지 않으려 하고‥‥

그러자 시멘트 포장을 걷어내던 부분대장이 대검을 빼내 베트콩의 손목을 힘껏 찔렀다.

모두 눈 깜짝할 새에 벌어졌다.

칼을 맞은 손목이 슬그머니 아래로 처지고 수류탄이 떨어졌다.

『엎드려!』

잠시 후 그 자리에서 4명의 베트콩이 튀어 나왔다.

11중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집중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서 한 떼거리가 몰려 나왔다.

바로 그 자리가 퀴논지역 베트콩사령부였다.

사람은 위급해지면 본능적으로 평상시 다니던 길을 택하는가 보다.

창문이나 무너진 담벼락을 넘어 집뒤 대나무 숲으로 달아났다면 훨씬 안전했을 것이다.

그쪽에는 우리 병사도 적었을 뿐 아니라 대나무숲이 훌륭한 엄폐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급한 베트콩들은 대문을 통해 빠져나와 염전쪽으로 달아났다.

그렇지만 그곳은 아무 장애물도 없을 뿐더러 무제한 사격구역이었다.

퀴논지역 베트콩 사령부가 최후를 맞는 순간이었다.

서대위의 후임인 김진선대위는 중대장 근무 1년동안 적 사살 70명이라는 큰 전과를 올렸다.

사살이 70명이면 부상자는 그 3배인 2백명 정도로 계산 할 수 있다.

이 숫자라면 게릴라 부대 일개 사단에 해당한다.

결국 칵손계곡의 베트콩 1개 사단이 서-김대위가 지휘하는 우리 11중대에게 2년간 농락을 당한 셈이다.

두 중대장은 베트콩들 사이에 현상금이 걸렸다.

죽이거나 생포해 오면 당시 월남돈 3만 피아스타를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상당한 액수였다.

서부개척시대의 무법자도 아닌데 엉뚱하게 현상걸린 사나이가 내 휘하의 부하들이었다니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