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호 혜산진 제1대대 2중대의 비극 (1967년 5월16일)

 

     개요설명: 수도사단 제26연대 S-2 소령 김무경(육사 12기)

 

오작교작전은 수도사단과 백마사단의 합동하여 Song Cau에서 Tuy Hoa까지의

1번국도를 개통시키는 남북에서의 연결작전이었다.

Dong Xuan은 적정이 많고 월맹군이 있다는 가장 가까운 중대였고

대대와 연대로부터 차량통행이 위협받는 지역이어서 공중으로 보급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계속되는 도로파괴, 소규모 기습 등이 있는 매우 취약한 지역이었으나

도로를 장악하여야 하겠다는 생각만으로 작전지역에 대한 정밀수색과

잔적의 소탕에 약간 소홀하잖나 생각한다.

 

오작교 작전으로 적은 대부분 산으로 도망갔고 때때로 산에서 내려와

도로에 지뢰를 매설하고 부대도 기습하는 등 기지주변의 잔적들이 아군을 괴롭혔다.

그래서 맹호 제26연대는 주변의 잔적을 소탕할 목적으로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보안유지가 잘 안되어서 하루전날(작전개시 전야)에 제1대대의 2중대가

V.C의 습격으로 많은 피해를 받았다.

제2중대는 인근에 월남피난민 수용소를 두고있어 병사들의 출입이 잦았고,

또 이 피난민을 통하여 V.C의 첩보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역이용 당하여 우리의 정보가

이들에게 흘러들어 갔다는데서  결국 제2중대는 적의 기습에 적지않은 손상을 받았던 것이다.

 

제2중대장은 67. 5. 15일 낮에 출동을 하루 앞두고 군장검사를 실시하였다.

물론 출동준비에 만전을 기한다는데서 중대장의 조치는 잘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제2중대장은 작전출발에만 신경쓰고 경계근무를 소홀히 하는

군장검사 사후조치를 잘못함으로써, 월남참전 후 계속 승승장구한 연대에 많은 피해를

보게 하였으며, 한국군으로써 뼈아픈 상처를 입었다.

 

중대의 군장검사를 본 월남 피난민은 금명간에 작전이 개시될 것이라는 정보를

V.C에게 알렸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것을 안 V.C은 5. 16일 새벽에

2개 중대이상의 병력을 갖고 기습을 가하였다.

제2중대장은 군장검사를 한 다음에 모든 장구를 풀어 임전태세에 만전을 기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몸이 피로하여 이를 확인하지 않았고, 병사들은 출동의 들뜬 기분이였다.

중대장 자신도 명일작전 축배 후 취침한 것이다. 항상 잠복근무 외각근무시는

전원 비상투입훈련을 하여 모든 점검을 하도록 되어있었으나 경계근무를 소홀히 한것이다.

 

호에 있어야 할 소총을 비롯하여 전투장비를 꾸려놓은 배낭이 내무반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일부 명 병사들은 몇잔의 맥주로 인하여 깊은 잠에 빠졌다.

경계태세가 잘 될리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V.C은 철조망을 절단하고,

교통호를 따라 들어오면서 호에다 수류탄을 던졌다. 대항하여 싸울 틈을 주지 않았다.

이 피습에서의 전과는 제2중대에서의 전과보다는 포사격에 의한 전과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숫자적인 전과는 기억할 수 없지만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뼈아픈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

 

 

 오작교 작전중 혜산진 2중대 피습

 

           증언: 제26연대 제2중대 제3소대 1분대장 김 희 균 하사

 

 

처음 소대장은 최창규 소위였지요.

그러나 무능한 소대장이라 찍혀서 소대 전원 교체요청에 의하여 이강해 중위가 취임하였지요.

맹호8호 작전때 LMG 사수 배철부 상병이 전사하였다.

이유는 지휘통솔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 상급부대에서 원인분석을 하라 하여

분대장급 이상이 중대장(김상옥 이전) 대위에게 불려가서 자세히 이야기하여

당시 부중대장 이강해 소위(그 뒤 중위)를 소대장으로 모시게 됨.

(즉 전임자는 작전도 농담으로 흐지부지하게 함)

때문에 우리 3소대가 사기는 최저 상태였는데 이강해 중위가 지휘를 잘하고

분대장 이상급은 거의다 훈장을 타고 이중위는 오작교 작전의 영웅장교가 되었으며

기간중 소총 42~43정인가를 노획하여 낙인찍힌 소대가 영웅소대로 반전 되었지요.

 

소대장이 참 현명하고 용감해서 전임자와는 지휘면이나 여러면에서 천지 차이였지요.

그래서 소대장이 분대장을 위해주고 또 아래에서는 받들어주는 좋은 기풍이 닦아졌지요.

그러니까 그 중대의 전과는 거의다 3소대에서 다 나왔지요.

공격도 간다면 거의가 우리 소대로, 제가 1분대장을 하면서 거의 나갔지요.

 

  *질문 1:2중대 피습상황

  *답변 1:우리 맹호앞에는 VC이 있을 수 없다 하여 자만심이 너무 컸었지요.

낮에는 수색정찰을 하고 밤에는 진지공사 및 경계를 하는데 피곤하여 경계가 소홀히 되었지요.

진지공사가 거의 완료 되었을 무렵이지요. 아직 통로는 안된곳도 있었지요.

그러다가 작전을 한다해서 잔류병력과 후송 갔다온 병력으로 보초를 세우니

라디오 레시바를 귀에 꽂고 있었으니 모든 경계병이 졸았지요.

 

적은 중대 기지 주변의 통신망을 모두 두절하고 대나무로 몇 개 겹쳐

철조망(원형 철조망)위에 걸치고 넘어와서 호에 까지 다 들어와 버렸지요.

중대내에서의 1소대가 우측, 화기소대가 중앙, 3소대가 좌측, 2소대는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3소대 1분대에서 후송갔다온 병사(김?? 상병)가 레시바를 귀에 꽂고 졸다가

무심코 눈앞에 있는 적을 발견 보고차 막사로 들어왔다.

VC은 그 뒤로 따라 들어와 수류탄을 투척하여 3소대 1분대는 전멸,

분대장 안건장 하사외 전원이 살상되었고 다만 부분대장과 유탄 발사기 사수만이 살아남았지요.

 

그 다음에는 박격포에 TNT를 넣어 폭발 소대장 막사에서는 TNT로 폭발(소대장은 피하였음).

취사장 뒤 바위위에(7~8m) 약간 높은 곳에서 AR을 거치 계속 사격하였으므로

밖으로 나올 수도 없고 고개를 들 수도 없고 총을 쏠 수도 없었지요.

사격하면 위치를 폭로한 것 뿐이 되지 않으니까요.

사격만 하면 수류탄 TNT가 막 날라오니까

신병들은 겁에 질려 무조건 쏘다가 수류탄에 거의 죽었습니다.

 

맨 처음엔 양민들을 붙잡아 혼란조로 집어넣고 아군이 사격해서 혼란조를 사살하면

그 뒤에 들어온 수류탄, TNT조가 들어와 사격에 의한 아군의 위치를 파악하고 수류탄 투척

그 다음 사격을 가하며 월맹 정규군이 따라붙는 습격형태였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 중공제 방망이 수류탄을 모아 보니까

(불발탄 안전핀도 안빼고 던진 수류탄 등) 일곱마대(공사용 마대)나 되었지요.

 

3소대 옆에 있는 81m 탄약고가 폭파되면서, 중대전체가 불바다가 되고

제2소대만 피해가 없었지요.

그때 누구 하나 지휘한 사람도 없고, 다만 캄캄한 야간인지라

적의 정규군이 들어오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총을 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소용이 없었고,

다만 VC들 소리만 들릴 뿐 아군의 소리는 나지 않았으므로 모두 다 죽은 줄 알았다.

만일 그때 대대에서 조명탄만 일찍 띄워 줬더라도 그렇게까지 큰 피해는 없었지요.

 

3소대는 적과 부둥켜 안고 서로 물어뜯는 형편이었으니까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그리고 소대도 같은 시간에 똑 같이 당했는데, 적이 들어와 무반동총도 빼앗기고 해서

한 2시간 정도 경과된 후부터, 비로소 사격이 시작되고,

즉, 조명탄이 발사되어 VC과 우리 병사와 구분이 되니까 호속에서 막 사격을 하는 것이지요.

 

  * 질문 2:왜 무전연락을 하지 않았습니까?

  * 답변 2:중대 벙커에 적이 뛰어들어 완전히 도때기 시장이 되었으며

적과 함께 손가락을 물어 짤려지고 하는 형편이었고, 중대장 숙소도 수류탄으로 폭파되었는데

무전을 할 겨를도 없고 또 사람과 무전기와 혼란된 상태였지요.

죽은 사람들은 거의가 신병들이었지요.

겁먹고 무조건 쏘다가 위치탄로로 수류탄에 죽는 거지요.

그러니까 2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비로소 무전역락이 되어 FO(소위)의 요청에 따라

조명 첫발이 떨어지자 그때부터 호에서 M16 소총을 갈기기 시작했지요.

그러니까 적은 도주하기 시작하였고, 그래서 철조망에 걸려 죽은자,

방향도 모르고 도주하다 죽은자들이 속출했으니, 그들 월맹 정규군은 모두 도망갔지요.

 

나중에 3중대가 헬기랜딩을 하여 차단하였다가 교전이 붙어 희생자가 많이 났었지요.

그때 AR소총, 칼빈소총, 장총 등 총기11정을 노획하였고,

제3소대 제1분대의 M16 소총은 11정을 잃었지요.

그러나 3중대가 차단하여 교전하여 M16 소총 5정을 다시 찾았고 나머지 6정은 못찾았지요.

 

그리고 날이 새어 08:00~09:00경에 환자들을 후송키 위한 헬기장으로 운반해서 후송시키려는데

갑자기 적의 박격포탄이 쏟아져 3소대 위생병이 직격탄에 전사하고,

화기 1소대에서도 전사자가 났지요. 정찰기가 급출동하여 정찰을 했습니다.

 

그때 소대장은 이강해 중위가 부중대장으로 가고, 5월 1일자로 원영길 소위에게 인계하고

본인은 1분대장을 안건장 하사에게 인계하였는데, 안하사가 죽었습니다.

또한 수류탄이 여기저기 터질 때 내 호속에 갑자기 불개미가 달라들어 물어뜯어

호속에서 엎드려 뜯어내고 있는데 갑자기 내 호위에서 수류탄이 폭발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질문 3:3중대의 차단은?

  *답변 3:3중대는 대대의 명령으로 phu youg(2)로 차단하다가 퇴각하는 적과 교전하여

전과는 M16 소총 4~5정을 찾았고, 아군 4명이 전사하였으며 적들과 상당히 큰 교전이

벌어졌다는데, 그 뒤의 상황은 잘 모르겠음.

 

  * 질문 4:대대의 조치

  * 답변 4:날이 센 다음에 비로소 참모들이 와서 조사하여 보고하였지요.

그리고 우리 중대의 사기문제로 해변가로 이동하고(그뒤 15일 후 정도) 다른중대에 인계하는데

인수인계중 안전핀을 빼고 Box속에 수류탄을 넣은 부비추랩을 확인하지 못하여

화기소대에서 폭발이 일어나 소대원 1명 전사, 2명 중상의 피해가 발생함.

 

  * 질문 5:2중대 피습중 우리 피해는

  * 답변 5:3소대만 중,경상자가 15명, 사망이 7명, 화기 M16 소총 11정 분실.

제1소대도 위와 비슷함.

화기소대도 위와 비슷함.

2소대만 피해없이 경상자 1명

 

※화기소대의 유만진 병장은 손가락을 물어 뜯겨 3개가 잘리고 칼도 맞은 흔적이었고

수류탄 파편이 전신에 박혀 죽었지요.

중대장 김양옥 대위는 그뒤 해변가로 이동한 다음, 보직 해임된(5~6개월 정도) 후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바로 옷을 벗은 것으로 안다.

 

  * 질문 6:중대장이 데리고 다닌 여자는?

  * 답변 6:오작교작전 시작할 무렵에 포로를 잡았지요. 15~16세 정도 여자 였지요.

작전중에도 산속까지 계속 데리고 다녔지요. 기습받은 그날도 그 여자애는 중대장실에 있었으며

적이 들어왔을 때 월남인 목소리가 들리고 포탄소리가 들려 처음에는 적의 기습인지도 몰랐고

그 여자애의 친구들이 들어온 줄로 착각을 했었지요. 막 잠에서 깨어난 순간이었으니까요.

 

 

*오작교 작전부터 이야기 

 

오작교 개통 기념으로 훈장 수여식이 있다하여 혜산진부대 영웅장교로

(소대장 이강희 중위) 충무무궁훈장을 받고 귀대후 소대원과 기쁨을 같이하며

작전은 계속 되었지요. 상부의 명령으로 지역 확보위해 일정한 베이스(숙영지) 점령

진지공사 준비에 착수 낮에는 수색정찰(조별), 저녁에는 매복(조별),

일부 병력은 참호 작업, 막사 작업, 너무나 고된 작업이 실시되었지요.

 

공사는 2/3 정도 완료되고(막사구축 개호는 완료) 미완료, 통료 적 접근로 장애물 미설치

이런 상태에서  대대 작전지시에 의해 주변 수색작전 실시하라는(4일간) 군장검열을 받기 위한

중대원 전원 집결(잔류병력 각 소대 1개 분대 및 환자 포함) 집결하여 군장검사 큰 모순

군장검열 받은 광경을 본 적은 2중대를 기습하기로 결정한 것같음.

 

당초 대대 기지를 기습하기로 한 작전을 변경,

출동하고 나면 잔류병력은 1개 소대 병력뿐이라는 판단,

2중대는 04:30분 출발할 계획, 적은(정기군 1개 대대 병력) 적기습은 새벽01시쯤

(이런 내용은 적포로 병사에 의하여 밝혀진 사실임)

그날 보초는 각 소대 잔류병 또한 환자 등이였지요.

 

작전에 참석할 병사들은 보초에 제외, 그것이 문제점. 순찰조 미실시.

많은 중대의 문제점에다, 반면 적은 세밀한 계획,

대대간의 전화선 사전에 절단, 개인로 투입 보초는 졸다가 사살되고

또한 겁에 질려서 대원을 깨우러 오다가 베트콩에 의해 분대막사에 수류탄으로 폭파.

완전 포위 육박전까지 81M, 60M 박격포 포탄 탄약고 창고가 적의 TNT에 폭파.

중대는 참사의 불바다가 되었지요.

 

누구 하나 지휘하는 사람 없었지요. 대대간의 무선교선도 없었고,

여기저기 비명소리만 날뿐...

중대(취사장쪽의 바위틈 높은 곳에서) 적의 자동화기가 발사되고,

여기저기서 TNT 및 수류탄(방망이 수류탄)이 터지고 아스라장,

 

참사의 시간이 약 두시간이 지났을까

대대에서 조명을 띄워 주더군요. 그때서야 반격을 가했고

적은 도망치기 시작(적과 구분할 수 있었으니까요)

무장헬기 지원 완전히 고객를 숙여 있던 지휘자들도 떠들기 시작,

베트콩은 도망치고 난 다음, 비명의 환자 응급치료, 헬기장 운반(후송준비)

새벽 06시쯤 또한 차례 적의 박격포 사격으로 인한 3소대 위생병이 포탄에 의해 사망,

그때 그 광경은 눈 뜨고 볼 수가 없었지요.

 

본인과 열심히 전우 한 사람이라도 구하겠다는 마음에 열심히 돌보는 위생병이

순식간에 싸늘한 시체로 되는것을 보았을 때, 그때 그 심정은 당해 보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더욱 가슴아픈것은 부상자 후송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죠.

환자수송은 미군 헬리콥터 이용에 의존해야 했는데 미군 측에서 비행 혹은 착륙 불가로

오지 않으면 험준한 산 속에서 숨져가는 병사들을 지켜 봐야만 하는 때가 정말 괴로웠습니다.

 

각종 지원에 의해 11시경에 박격포 사격이 중지되고 피해사항과 전과 여부,

보병은 제일 피해가 많은 소대가 3소대, 1소대, 화기소대, 2소대는 피해가 별로 없지요.

 

정확한 피해는 밝힐 수 없으나

장비피해:M16소총 11정 등

전과 노획장비:AR, CAR 장총 등 11정

인명 시체 101구 적 수류탄(방망이) 97발, 포로 3명 등

적은 작전실패했다는 것

적이 판단하기로는 군장검사 끝나고 작전출발하고

잔류병력으로 1개 소대병력이 있을 줄 알고 왔는데 중대병력이 있는줄 몰랐다는 실패의 증언

즉 말해서 한 명의 경계병이 소홀함으로서 중대원 다반수가 참변을 당한다는 실감

또한 한 사람(보초)이 희생각오 했더라면 그 엄청난 비극은 없었을 것을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마음에 상처 평생토록 본인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이후로 본인은 밤이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지요.

 

본인은 귀국후 김신조 사태 때문에 휴가도 25일에서 15일로 단축되었어도

군대에 간 후 처음으로 고향길을 걸을 수 있었던 가슴에 뭉클한 기쁨을 맛보았지만

1967년 5월16일밤은 내 생애 죽는날까지 못잊을겁니다.


 

*참고자료 
 증언을 통해본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1권(3권중, 군사편찬연구소)


 

월남전 한국군 전사를 이해 하시는데 도움이 되시길 빕니다.
                           www.vietvet.co.kr / 2003.12.2. up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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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사: 한호성 전우님 사람이란 망각이란 것이 있어서 괴로움도 잊을 수 있는 편리한 기능이 있다는데 아직도 못 잊으시나 보죠? 이 글을 올리면서 괜히 그 아픔을 건드리지 않나 망설여지지만 우리 국민들이 이 고통을 알아야한다는 일념에 올리고 말았습니다. 이젠 툴툴 털고 악몽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해 봅니다. [12/02-15:03]
61.248.99.68
한호성: 좋은자료주셔서감사합니다.사업하시랴.보훈병원 병문안.많은모임.홈페이지관리등 바쁘신생각이들어 저까지 마
음이 바뻐집니다. 쉽지않은일들 어떤말로 보답할수는없는것이지만 고맙습니다.
자료내용에 김하사.의증언 잘아는얼굴이겠지만 이름만으로 기억하지는못하겠습니다.김하사의말처럼 저를포함
해서 참전전우님모두가 베트남전쟁터에서
[12/03-18:56]
61.248.99.68
한호성: 아름다운추억보다는 가슴아픈추억이 많으리라생각하며 그러한희생이있었기에 지금우리나라가 이만큼 부강해졌
다는 생각을해봅니다. 우리는어려운시대에태어나서 "나와 우리를위한것이아니라 후세에게 우리의희생이 한알의
밀알이 될것입니다... [12/03-19:03]

 

아래 전투수기는 "한호성"님의 체험수기를 옮겨 놓은것입니다.
www.vietvet.co.kr


맹호 제26연대 2중대 2소대  2분대원 (오작교 작전중)

꾸멍고개/작전준비

내일아침 04:00시에 맹호8호작전이 시작된다,  
M1소총 꼬질대 질 잘하고 대검도 예리하게 갈아서 녹슬지 않토록
윤활유를 살짝 발라서 칼집에 넣고, 또한 군장 관계없이 비상 칼을 준비한다,
나는 대검 외에 두자루 칼을 준비한다,
하나는 만일의 경우 1대1 싸울 경우를 생각한 것이다,
또 한 자루는 포로가 됐을 경우 자살하겠다는 준비였었다,  

국내에서 훈련할 경우 짐을 줄이려고 노력을 한다,
실전에서는 명령을 하지 않아도 된다,
실탄, 수류탄, 한발이라도 더 가지고 가려고 노력을 한다,
M1총은 무겁고 실탄도 무겁다, 허리에 차고 양 어깨에 걸쳐보지만  
M16에 비해 부피도 많고 실탄수도 적다,
전투를 하다보면 실탄 수를 생각해야하고 8발 장전하는데
숙달이 안되어 있으면 정말 바쁘다,

쏘다보면 한꺼번에 두발이 약실로 들어가 노리쇠가 꼼짝하지 않는다,
급한데 정말 환장한다,
훈련같으면 일어서서 노리쇠를 발로 내질러 버리면 빠지겠지만
일어서면. 바로 타겟트이고
옆에 장애물에 데고 처치하려니 옆 전우잡겠고 당황한 적이 있었다
파병한지 3개월만에 첫전투 맹호8호작전에서!!!

M1 소총이 M16보다 좋았던점
M16이 지급된 후에도 분대장 저격수는 M1 소총을 필요로 하였었다,
원거리 저격에는 M1 소총이 그만큼 정확하였다,

그리고 힌봉투에 머리카락, 손톱, 발톱, 깍아서 봉투에 넣고 군번과 이름 쓰고
봉해서 인사계한테 주면 나중에 네가 죽거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면
그 봉투가  나의 영혼이 되는 것이다,
정신무장끝, 작전준비끝이다,

나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거든 전우야 이렇게 전해다오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었다고..."

(육감)기습당할 징후

오작교 작전 끝날 무렵 약간의 부상으로 6후송병원에서 치료후
중대에 돌아온 날이 1967년 5월15일 정오쯤이다,
맹호26연대 1대대 2중대, 도착하자 포장된 m16 소총을 지급 받았다,
성능시험을 끝내고, 나는 오늘 병원에서 왔기 때문에 매복도 없고
내일 출발하는 작전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첫 야간보초근무 pm 10:00부터11:00까지이다,
밤11:00 부터는 정경권, 12:00부터01:00까지 박순덕,
하늘을 보니 구름이 낀 날씨 바람은 없고 모기가 어느 때보다, 많이 데드는것 같다,
기분도 별로 좋치않고 몸이 끈적대는 느낌이다,

오작교 작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않아 중대기지 작업중이며
분대막사, 개인호, 철조망 작업은 거의 완성되고 적지로에 가까운 화기소대는
산능선이 연결된 곳으로 지붕형, 울타리형 철망작업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원형 철망만을 임시로 치고, 물론 지뢰도 설치가 않돼서 불안한 상태,
어디선가 깡통소리가 은은하게 들릴듣 하다가도, 귀를 귀우리면 들리지 않고
철조망 사이를 유심히 살펴도 아무런 물체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때 앞면이 1소대에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맹호라는 이름에 키우고 있는게 있다,
간간이 웡웡데고 짖는다, 여전히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바짝 긴장하고 있었지만
비상을 걸기엔 발견된 것도 없고, 어떤 소리가 확인될 만큼 확실하게 들리는 것도 아니였다,

한시간이 지나고 교대시간

"정경권 이리와 봐"

"귀를 손으로 모으고 철망 외각 쪽으로 한참동안 들어봐"

"무슨소리 들리나?"

"응"

...아주 작은 소리

깊은 밤 정막속에 달빛도 없는 바람도 없는 기분 나쁜 이 시각
어둠은 짙게 깔려있고

"경권이 나 들어가 잘 테니 이상하면 비상 걸어 신경좀 써"

그리고 나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
잠결에 땅이 꺼지고 하늘이 폭발하는 꿈을 꾼다,
약간의 정신이 들고보니 꿈이 아닌 생시다,

"따, 따, 닥!,"

"쿵, 쾅, 쨍~,"

연속괴음이 진동하고 섬광이 번쩍이고
포탄먼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와!, 와~,

함성과 함께 비명소리 요란하다,
분대막사에서 개인호는 10~20m이나 교통 호는 아직 없어서
똑딱하는 순간에 개인호까지 가야하는데 벌써 몇 명의 전우가 비명과 함께 쓰러진다,
펜티하나 입은체로 탄띠, 철모, 쓰고 몸을 날려 개인호에 도착했다.

진지에 개인호는 약간 비탈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당시 1소대와 2소대 2분대와 거리는 불과10m이내, 그 사이에 작은계곡이 있어서
1소대쪽은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와지선을 통과하는 움직이는 물체는 보인다,

1소대 능선에 까맣게 밀려드는 적이 보인다,

"마우런, 마우런, 만호홍꺼..."

맹호가 없으니 빨리빨리 오라는 월맹군 지휘관의 목소리 였는지도 모른다,
나의 위치는 2분대 오른쪽 옆, 중화기 벙커가 있고
좌측 첫번이 경주에 사는 별명 말뼉다귀, 다음이 박순덕,
1소대는 이미 점령된듯 요란한 함성과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2분대인 우리는 4명에 불과하지만 많은 화력을 1소대쪽을 향해 집중 할 수 있었다,
수백명의 검은 물체들 방아쇠만 땡기면 쓰러트릴 수 있었던 적.
그러나 아무도 그 적을 향해 발사하지 않았다,  누가 지시하거나 할 사람도 없는데?  
이유는 하나..
1소대는 이미 적과 육박전이 시작되어 살려달라는 비명소리와
어둠속에 식별이 불가하고 본능적으로 적속에 전우가 있다는 공감 때문에
전우의 목소리 들리는곳을 향해 총을 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시간 3소대, 화기소대의 상황은 전혀 알길이 없다,
3소대는 뒷편이고 화기소대는 오른쪽 50여m 떨어져 있다,
우리 또한 앞을 방어하는데 벅찬 상황이었다,
m16소총을 연속 사용하면 총열이 용강로에서 바로 나온것처럼 어둠속에서는 불덩이로 보인다,  
이때 탄착을 삽입하면 단발로 놓여 있어도 연발로 저 혼자서 총을 쏜다,

이렇게 혼란스런 상황이 잠시 조용해지며 하늘에서 대낮처럼 불이 밝혀지고
B29가 조명을 터트리고 포대에서도 조명을 쏘아올려 엄청난 적의 함성은 약해졌지만,
적의 포탄은 계속 날아와 이곳저곳에 "쩡~쩡~" 터지고 있었다,

포가 무섭다고 느끼는것은, 코 앞에서 포 터지는소리는 쇠가 찢어지는 괴음이기 때문이다,
눈도 코도 없는 것이 바람소리를 쌩하고 느끼는가 하면 이미 폭발을 한다,
호속에 있지만 이 괴물이 하늘에서 날아들기 때문에
머리위에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나 할 뿐.. 안전한 방법은 없다,

바로 옆에서 포가 터지며 높이 솟은 흙과 돌가루가 철모위로 "좌르르~"
쏟아지며 뭐가 철벅하고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다.
무엇이라고 말하기가 싫을 정도입니다.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이때에도 1소대 개인호 중화기 벙커는 적이 차지하여
2분대인 우리와 주고받기식 전투는 계속 되고있는데
잠시후 정돈된 융단 포사격 소리가 땅이 꺼지고 하늘이 진동하는
아군에 포가 불을 품기 시작한것이다,  

(전투 끝난후 알았지만 방법이 없어 죽기를 각오하고 아군진지 50m반경 원을그려
진내사격 집중 포사격을 요청했다고 하였다.)

오늘밤 하늘과 땅이 포탄과 총알이 뒤엉킨 상황이라
무장헬기나 부상병을 위한 헬기접근이 불가하였다,
1소대 벙커속의 적과 2분대 전투는 계속되는데.....

나의 2분대는 4명 "적"숫자는 정확히 알 수 는 없지만 2명 이상인 것은 분명하다,
상당한 시간동안 전투를 했기 때문에 실탄이 부족하고 수류탄도 다 떨어졌다.
정경권 실탄많아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말을 해야 되는데 도대체 머리를 내밀 수 가 없다.
고개를 내미는 순간은 실탄이 발사되는 순간이다.

개인호는 위 덮게가 없지만 중화기 벙커는 마대지붕 덮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LMG 나 AR 거총대 입구가 있고 우측이나 좌측에
가로, 세로 40~50cm 가량의 창문이 하나있다,

소총으로 아무리 많은양을 쏘아대도 허사이다,
슈류탄 던져봐야 언덕이라 굴러 터지기 일수이고
그나마 위협할 탄약을 아껴야 할판 그렇다고 저 쥐새끼들만 경계하는게 아니고
앞뒤가 다 뚫린 상황이라  두눈을 열개로 사용해야하며 긴장이 아니라 초긴장 극에 달했다.
옆에 우리 중화기 벙커에서도 LMG 실탄 다 떨어진 모양이다.

M79유탄은 남아있는지 쏘아대지만 그것도 효과가 없다,  
벙커 창문이 아주 좁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 M79 유탄만이 벙커 내부의 적을 죽일 수가 있었다.
그래도 저 창문으로 한방만 들어가 준다면 끝장인데 하는 마음에서 큰소리로

"잘 한번 쏘아봐!"

유탄은 곡사포이지만 가깝기 때문에  목표상단에 잘만 조정하면
명중할 수 있는 희망을 걸었다, 쥐새끼들이 전투경험이 많은것같다.   

"타,타,닥!"

하면 비탈이라 개인호 앞면보다 뒷면이 높은데 여지없이 뒷벽에 밖힌다,

꽤많은 시간이 흐른것같다,  
아군 포소리도 멈추고  하늘은 여전히 조명탄이 터지고
적포탄이 몇발씩  날아와 여기저기서 터진다,
저 놈들만 처치하면 상황이 멈출지도 모른다,

"벙~쩡~"   

맥주병따는 소리후 "쩡~" 명중이다, 그렇다.
조명탄 불빛에 보이는 1소대 벙커속에서 뿌연 연기가 나오고 있다,
생각처럼 쉽지 않았지만 결국 한발이 명중하여 벙커 내부창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총소리도 멈추었다,

그렇다고 눈으로 보기전에는 안심할 수 는 없고
몇발 쏘아 보기도하고 총구에 철모를 걸어 올려 보기도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비명소리는 여전히 들리고 땅보다 하늘이 요란한 것은
큰 비행기가 높이떠서 조명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다.  

적 포가 떨어지는 순간을 빼고 너무조용하고 어찌할 수 없는 구원에 소리
여기 저기서. 너무 선명하게 살려달라고 외쳐댄다,
움직이는 물체도 발견할 수 가 없고 아군도 다 죽었는지
산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도 그냥 호속에서 숨죽이고 무엇인가 나에게 접근하면 바로 공격해서 죽인다,
이 순간 살아있을 전우는 모두 나와 똑같은 자세로 숨죽이며 공격자세 였을 것이다,
옆에 경권이를 불러보고 싶지만  적에게 노출될까 그럴 수 가 없었다,
전투가 다시 시작될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날이 밝아질것인가?  

이제 간헐적  "적에 포탄만 2~3벌씩 날아와 터질 뿐, 그 외는 너무 조용하고 불안하고 초조하다.
어둠이 사라지기전에는 적이 언제 함성을 지르며 또 다시 밀려올지 모른다는 긴장감 때문에
숨이 막힌다. 차라리 총성이 울릴 때가 긴장감은 떨쳐 버릴 수 가 있었다.
전선의 그날 죽음의 장소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늘에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조명탄 터트리는 것도 멈추고 적포탄도 날아오는 회수가 줄었다.
아직은 어둡지만 지형, 물체 식별이 조금씩 가능해지고  고개를 슬쩍 내밀어 사방을 살펴보지만
아무것도 움직이는 물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1소대 쪽에선 여전히 살려달라는 합창의 비명이 들려오고 날은 조금 더 밝아졌다,
작은 목소리로 옆에

"정경권 괜찮아? 옆에도 불러봐"

이렇게 생사를 확인하고 경권이는 나보고

"담배 있냐?"

고 물어오지만 나는 담배 피우지 않았다.
그래도 담배가 있다면 이 순간 피우고 싶은 생각 간절하다,
피 말리는 4시간 동안의 10년같은 시간... 죽고 죽이고 찌르고 터트리고 이것이 전쟁...

처음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하나둘씩 개인호에서 나오고
1분대는 이쪽,  2분대는 저쪽, 남은 적을 사살하기 위해 긴급 주변수색을 시작한다.
한명의 적이 등만 보인체 앉자서 끄덕데고 있어 총구로 툭치니 맥없이 쓰러진다.
유탄 한발을 조금전에 혼자 다 먹었는지 복부가 다 날아가고 텅빈상태

3, 4일 후쯤 적이지만 다 묻어주었다.  
서둘러 묻어버리면 좋겠지만 살아남은 우리마져 같은 죽음으로 언제 변할지 모르는 운명...
고지복판에 돌아와 전사자를 모으고 이곳저곳 수백 발의 불발탄 수류탄
(당시 중국제 방망이 수류탄 불발이 이렇게도 많은가?) 한쪽으로 모으고  
부상자 자리를 마련 헬기 안착할곳 준비하고 부상자를 한곳으로 이동
이미 전사한 전우보다  아주 큰 부상당한 전우는 눈을 뜨고 바라보기 힘들다.
내장이 들어나고 신체 일부가 없어진게 대부분 그렇다고 손 쓸 방법도 없다.

그냥 이대로 죽어가며 산 자는 그냥 바라보고 있을 뿐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남았지만 나중엔 모두 떠나듯이..........

그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멀리 가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사격장 같은곳에서 살아남은 것이
지금도 기적인지 운명인지, 인간의 생명이 때로는 끈질기다고  말한다,
중대장이 집결하란다,
신속히 c-레션을 먹으며 지시사항 듣는중,  

"쉭~" 쉭 쉭~"

"쨍! 쾅~!~~"  

적 박격포탄이 날아와 여기저기 터진다,
순식간에 바람처럼 자기 개인호로 뛰는데  둘, 전우의 운명이 1초순간에 바뀌고 만다,
급하다보니 한 두발차의 근처의 호속으로 본능적으로 몸을 날리는데,
먼 호속으로 전우가 뛰어 들어가고 가까운 호속에 있던 전우가
다시 먼 호속으로 옮겨 가는데 개인호 입구에서
호 속에 들어가기전에 박격포 한발이 입구에서 터졌다
그 전우는 쓰러지고 말았다.

포탄이 잠시멈춘 시간...  
몇 명의 전우들이 쓰러진 전우 옆으로 가서 살았는지 확인하려고 이것저것 물어본다,
생사를 확인하는 자리에서 그 전우는 얼굴이 깨끗하고 정신이 맑았으며

"6,25때 형이 죽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죽으면 안된다..."

고 마지막 순간에도 부모형제를 걱정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 마지막 말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죽은자 마져 조국은 배신하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씁쓸하다,

옷을 벗겨보니 수백 발의 포, 파편이 관통하여 전사하였다,
조금 전에 명성이 자자한 1연대인지, 기갑연대인지의 3중대가
이미 기습하고 도주하는 적을 추적 앞질러서 랜딩하여 전투중이라는 정보를 알게된다,

잠시후 헬기가 한대 날아온다.
채명신 사령관님이 도착하여 비참한 상황을 바라보며 지휘봉으로
몇 번 왼손바닥을 툭툭 치고 말없이 날아가 버렸다,
당시 맹호26연대장님은 박완식 대령 무척 화난 모습을 기억하고 있으며
(공격에 실패한 지휘관, 방어에 실패한 지휘관의 차이를 나는 알고 있다.)

수습작전이 숨막히는 속도로 진행되고, 여러대의 적십자 그려진 헬기가 날아오고 있다.
미군 헬기조종사 한사람이 피투성이 전우를 끌어안고 인공호흡을 하고 있다.
다른 민족 미군이 저럴 수가? 이상한 감정에 북받쳐 왈칵 눈시울이 뜨거워!!
마음깊이 고마움을 표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6후송, 필리핀, 클라크 미공군기지로 후송된 것으로 "기억" 하고 있으며  
오늘 수색작전도 끝나고 고지에 돌아왔지만...
오늘밤이 두렵다.
전투시작 20시간 흐른지금,
식사나 잠을 자는 병사는 한명도 없다,

어제 밤의 악몽.
작은 병력으로 오늘밤 기습해 온다면 하는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오지만...
또 3명씩 초병을 나가란다,  
세상에 태어나 절대 잊혀지지않는 공포를 맛본다.
그날 밤,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폐허로 변한 집 바위틈 사이에서 최고의 공포에 잠겨서 몸을 떨고 있었다...

나, 너, 한 명의 보초가 얼마나 중요한가
한 명의 보초가 100명의공격자 적을 방어, 충분한 시간을 지연할 수
있었다는 것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뼈저린 교훈을 경험했습니다,

1967.5.16.일자 동작동 21지역 월남묘역에 그 날짜가 12인 전우가 보였고.
왜 12라는 같은 날짜가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6후송병원, 필리핀등지로 떠난것만 알았지
살아남은 자는 바로 수색전에 몰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오음리 동기이기 때문에 기억하는 '양정문' 1소대원은 육박전에서
많은 숫자와 상대했는지 아침에 전사한 모습에서 보았고
15년전쯤 그 묘역에서 그의 어머니와 친족에게 구체적으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때엔 군사적으로 사기문제등을 고려하여 비밀에 속했는지 모르지만
뭔가 베일에 싸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M16 소총을 반납한지 36년... 베트남을 잊으려 목숨건 노력도 많이 하고
주로 세계 분쟁지역을 찾아 보따리장사 등을 했습니다.
남미의 엣살바로도 산악이 험하기로 유명한... 지금은 아니지만 용병출신이나
전쟁을 경험한 불행한자들이 살인청구업등 마약 등을 위해 모이기좋은곳.
일본태생 미국인으로 우루과이 몬테비디오 시내공원에서
베트남전 참전자인 "뉘시"라는 친구를 만난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허리를 다쳐서 부산까지 공수된적도 있습니다,
1회용 소모품으로 베트남에서 살아서인지 잘 피하고 다녀 죽지는 않고.
1992년 베트남을 잊으려다, 결국 半베트남인이 됐습니다,
죽어서 묻히고 싶은데 베트남 총통이 허락할 진 미지수입니다,

전우여러분... 삶이란 "참"힘이 들지요 고통스럽지만
살아있다는 것 하나로 행복을 느낄 때도 있더라구요,  
안정주의로 황혼 잿빛속에서 생활보다는 즐거움은 찾아주질 않으니
내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서 떠나야만하는 그 길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렵고 시련이 많지만 실패하더라도 작은 도전,
전쟁에서 상처 입은것을 치유하며 살아가는 나의 삶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따라하면 조금 위험합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베트남에서... 한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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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5.124.238
최진현: 작년에 올리셨던 "보초1~6" 체험수기를 정리 하였습니다. 정말 악몽의 순간입니다. 우리부대에도 VC 세이파 5명을 때려 잡았는데 뚤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해도 소름끼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군요. [12/03-21:48]
221.154.202.32
안흥종: 작전 명령 하달하는 위 사진의 전우중에 당시 전투로 희생된 전우도 있겠다, 작전중 생사의 갈림길은 백지한장
차이. [12/04-11:48]
220.117.227.115
강태공: 한호성 전우 님의 수기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부디 과거의 기억은 즐거운 추억속으로 묻어버
리고 행복한 삶만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12/04-19:31]
211.245.208.117
최현득: 오작교작전 직후에 많은 중대공격이 있었습니다 28년대 백마지역에도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12/09-10:02]